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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그린은 매우 훌륭한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어려운 첨단 물리학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실력이 뛰어납니다. 제가 처음 그의 저서 ≪엘레건트 유니버스≫를 접했을 때 저는 수능 수학 4등급에 빛나는 수포자였는데요. 그런 제가 다시 수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그의 책이었습니다. 그린이 설명하는 우리 세계는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알면 알수록 더더욱 깊숙한 곳까지 빠져들고 싶게 만듭니다. 이것을 달성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바로 수학이라는 점을 책에서는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엘레건트 유니버스≫가 너무 취향 저격이라 저는 그의 다른 저서도 모두 찾아서 읽었습니다. ≪우주의 구조≫를 통해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결합하기 위한 물리학자들의 노력을 이해했고, ≪멀티버스≫를 읽으며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알았습니다. 세 책 모두 우주의 신비로움, 그리고 수학의 강력함을 수식 하나 없이 우아하게 설명했습니다. 특히 양자 얽힘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 실존하는 현상임을 설명하기 위해 두 사람이 상자를 열어보는 이야기로 비유하여 설명하는 부분은 제가 읽은 모든 책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도 당연히 과학과 수학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여주는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책을 읽어보니, 지금까지의 책들과는 방향성이 좀 다르더군요. 과학과 수학에 대한 자세한 내용보다는 좀 더 인문학적인 내용이 많았습니다. 최신 물리학에서 초끈이론이 가지는 위상에 대해 서술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좀 실망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완독을 하고 나니 이 책은 나름대로 굉장히 훌륭하며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책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줄기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우리는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친구와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면접을 앞두고 긴장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몸은 수많은 원자가 전자기력을 통해 뭉쳐서 형성되었으며, 모든 사고는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정은 뇌의 전기신호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게 될까요? 소립자의 상호작용과 우리의 마음, 그 둘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이 책은 두 세계의 사이의 넓은 간격을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갑니다. 이 점은 목차를 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3장 기원과 엔트로피 : 창조에서 구조체로
  • 4장 정보와 생명 : 구조체에서 생명으로
  • 5장 입자와 의식 : 생명에서 마음으로
  • 6장 언어와 이야기 : 마음에서 상상으로
  • 7장 두뇌와 믿음 : 상상에서 신성으로
  • 8장 본능과 창조력 : 신성함에서 숭고함으로
  • 9장 지속과 무상함 : 숭고함에서 최후의 생각으로

창조 → 구조체 → 생명 → 마음 → 상상 → 신성 → 숭고 → 최후

이 구조가 보이시나요? 초반에는 정보와 엔트로피에 관해 다루며, 무생물의 세계 안에서 자신을 복제하는 최초의 생물이 등장하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점차 물질이 이루어서 형성한 정보 덩어리가 어떻게 사고를 하기 시작했으며, 어떻게 마음이 생겨났을까 하는 여러 사람들의 고민 소개합니다. 그리고 지성체인 인간 세상에서 종교나 이야기 같은 것이 생긴 원인 같은 것도 이야기합니다.

여러 종류의 소립자가 상호작용을 하는 미시세계에서 인간의 무한한 사고의 영역까지를 죽 훑어봅니다. 아마 내용의 깊이는 많이 깊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저자는 우리의 지적 여행 과정에서 수많은 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서를 잔뜩 소개해 줍니다. 그래서 마치 지하철처럼, 여러분은 여행을 죽 따라가다가 특별히 당신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주제를 만난다면 그곳에서 하차에서 관련 논문과 저서를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줍니다. 이를테면 지식의 간선도로라고 할까요?

감성적인 물리학자

지금까지 브라이언 그린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번만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준 적은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그가 어떻게 종교와 교감을 하였는가를 이야기해 줍니다. 철저하기 수학과 논리로만 작동하는 물리학의 세계를 공부하는 물리학자가 어떤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책의 큰 줄기를 따라가는 여행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자연에 경의로움을 느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저서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추천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은 개인적으로 전작 ≪엘레건트 유니버스≫나 ≪우주의 구조≫만큼의 감동을 선사하지는 못 했다는 것입니다. 두 책이 너무나 임팩트있었던 탓도 있지만, 이 책은 너무 다양한 주제를 한 권에 욱여넣으려 하다 보니 내용의 깊이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지요. 그렇지만 만약 앞서 언급한 두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굉장히 좋은 시작 지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어려운 교양 물리학 책을 읽을 때 쉽게 길을 읽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향후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예정이신 분이라면 이 책의 ‘분자진화론’ 설명을 먼저 읽고 이해하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꽤 어려운 책이며 한 번 읽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물리학 법칙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 도전한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엘레건트 유니버스≫랑 ≪우주의 구조≫를 재탕하고 그걸 갖고 독후감을 쓰면 좋겠네요.